글 정다민 학생기자 cdm4280lucy@kaist.ac.kr 박은지 학생기자 eunji4475@kaist.ac.kr 조민석 학생기자 louisjo@kaist.ac.kr 사진 정다민 학생기자
로봇 기술은 높은 효율과 정밀함을 바탕으로 산업현장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발전해 왔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협업형’ 로봇 기술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사람과 로봇이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첨단 로봇 기업 ‘엔젤로보틱스(ANGEL ROBOTICS)’를 <KAIST비전>이 직접 찾아가, 웨어러블 로봇의 현재와 미래를 체험해 보았다.
‘엔젤로보틱스’는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설립한 웨어러블 로봇 전문 기업이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부품과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로봇을 제작하는 곳으로, 하반신 마비 환자, 고령자, 재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보행 보조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엔젤로보틱스는 생체공학 보조장치의 성능을 겨루는 국제 대회 ‘사이배슬론(Cybathlon)’에서 2연패를 기록하며, 세계 무대에서도 기술력을 입증해 왔다. 현재 엔젤로보틱스에서 개발한 제품 일부는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병원에서 이뤄지던 재활 치료를 가정에서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엔젤로보틱스에서 선보인 제품들을 만나보자.
실험에 활용되는 트레드밀.
재활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MEDI ‘MEDI’는 보행 기능이 저하된 환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 개발된 재활 로봇이다. 관절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착용자의 보행 의도를 파악하고, 부족한 힘을 정밀하게 보조하는 힘 제어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이 덕분에 환자 주도적인 보행 훈련이 가능하다. 제자리에서 걷는 동작을 반복하는 고정형 로봇과는 달리, 실제 지면에서 균형을 잡고 체중을 싣고 이동하며 보행 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재 ‘엔젤렉스 M20’과 ‘MW10’ 두 모델이 개발돼 있다. 우선 엔젤렉스 M20은 하지 불완전 마비 환자를 위한 보행 훈련 로봇으로 다리 전체를 보조하며 근육 재건과 관절 운동 회복을 돕는다. 환자의 체형에 알맞은 크기와 길이로 설정할 수 있으며, 7가지 훈련 모드와 실시간 동작 분석 기능을 통해 정량적인 보행 평가가 가능하다. MW10은 착용형이 아니라 수동식 탈부착 보행 훈련기다. 사용자의 체중을 지지해 낙상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보행을 돕는다. 일상 복귀를 위한 솔루션, 엔젤슈트 ‘엔젤슈트’는 부상이나 재활이 필요한 사용자의 일상 복귀를 돕는 웨어러블 보행 보조 기기다. 기존 재활 로봇 대비 작고 가벼워 착용감이 뛰어나며, 계단, 경사로, 실외 등 다양한 환경에서 훈련이 가능하다. 센서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며, 온디바이스 AI가 이를 분석해 최적의 보조력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엔젤슈트 H10’은 엉덩이와 다리에 간편하게 착용해, 최대 15Nm의 힘으로 굽히고 펴는 동작을 보조한다. 이 덕분에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보행할 수 있다. 산업현장을 위한 웨어러블 슈트, ANGEL GEAR 엔젤로보틱스는 산업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착용형 로봇 ‘엔젤기어(ANGEL GEAR)’의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허리 보조 웨어러블 슈트 ‘엔젤 X’와 ‘엔젤기어 소프트 B10’, 공기 주입형 손목 보호대 ‘엔젤기어 소프트 W10’, ‘엔젤기어 소프트 W11’ 등이 반복적이고 무거운 작업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왼쪽부터 엔젤 X, 엔젤슈트 H10, 엔젤 X, 엔젤기어 소프트 B10을 기자들이 직접 착용하고 체험해 보았다. ©시경수
지난해 엔젤로보틱스는 대전에 선행연구센터인 ‘대전 플래닛’을 설립했다. 대전 플래닛은 로봇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센터 곳곳에는 프로토타입 제작 장비는 물론, 작업 공간이 마련돼 있다. 또 가파른 경사로, 울퉁불퉁한 지면, 계단, 실내외 트랙, 대형 트레드밀처럼 실제 환경을 재현해 볼 수 있는 테스트 공간도 있다. 이에 로봇과 장비들의 성능을 실사용 환경에서 검증해 볼 수 있다. 대전 플래닛은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기업과 연구자가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로서 다양한 연구실 개발 거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엔젤 X를 착용하고 무거운 물체를 들어보며 허리 보조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엔젤슈트 H10을 착용하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공경철 교수(가운데)와 함께 찍은 단체 사진. ©시경수
Q1.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교수로 임명된 직후에는 창업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학문적인 완성에 이바지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연구가 궤도에 오르자 두 가지 고민이 생겼다. 첫째로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하기엔 연구 규모가 커지며 제약이 많아졌고, 둘째로 연구 결과물이 실용화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창업하면 이 고민들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2014년 정부의 창업 활성화 제도와 함께 여러 요소가 맞물려 창업을 결심했다. Q2. 창업하며 어려웠던 점은? 기술은 창업에 있어서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었기에 함께할 사람을 모으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스템과 자금도 필요했다. 창업 초반에는 의욕이 넘쳐서 혼자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를 믿고 따라준 사람들이 옆에 있었기에 매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기술만 있다면 창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면 창업에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좋은 사람들이 선의를 갖고 합심한다면, 못 이룰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Q3. 다양한 웨어러블 로봇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엔젤로보틱스만의 기술적 강점은? 기존의 외골격 로봇은 휴머노이드에 사람을 앉혀 로봇이 걸으면 따라가는 형태다. 즉 휴머노이드가 강한 힘을 내면 묶여 있는 사람이 움직이는 형태인 셈이다. 다만, 노인이나 재활 환자의 경우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람 중심의 보조’라는 방향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사용자의 움직임 의도를 파악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지를 모델링한 후, 이를 로봇이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입어도 안 입은 것처럼 로봇을 가볍게 만들고 필요한 만큼의 힘만 전 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래야만 사용자가 충분히 움직이고, 재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마다 다른 보행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고 조율할 수 있는 인간 맞춤형 최적화 기술을 더했다. Q4. 연구와 제품 개발은 어떤 차이가 있나? 둘은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연구는 수십, 수백 번의 시도 끝에 한 번 잘 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시행착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작은 발견이라도 논문을 통해 널리 퍼뜨려야 의미가 있다. 그래야만 내가 끝맺지 못한 연구도 누군가 이어받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발은 수백, 수천 번의 시도를 통해 단 한 번의 실패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소수의 인원이 한 기술을 깊이 파고들고, 되도록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퍼지면 퍼질수록 본래의 목적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영역 모두, 기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달린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서로 다른 방식의 이어달리기인 셈이다. Q5 앞으로의 목표는? 한동안 웨어러블 로봇에 집중해 왔으나, 로봇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요소가 많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모터, 센서 등 은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각각을 조합해도 기술적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웨어러블 로봇 제품뿐만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하위 부품 하나하나를 고도화시켰다. 그렇게 만든 부품은 웨어러블 로봇뿐만 아니라 다른 로봇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을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각 부품을 학생이나 초기 창업팀이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해 보고 싶다. 엔젤로보틱스라는 나무 아래서 수많은 로봇이 탄생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다.
엔젤로보틱스를 직접 방문해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해 본 경험은 말 그대로 ‘미래를 입은’ 느낌이었다. 로봇이 동작을 인식해 자연스럽게 힘을 보태주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특히 계단을 오르는 것도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산업현장의 업무 효율 역시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실험실 곳곳에 배치된 장비와 작업 테이블, 직접 제조한 로봇 부품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자연스레 창의력이 샘솟을 것만 같은 생동감마저 느껴졌다. 단순히 기술을 보는 견학이 아니라, 인간을 돕기 위한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로봇 착용과 안내를 도와준 시경수 엔젤로보틱스 주임연구원(가운데)과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