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예림 학생기자 019llimm@kaist.ac.kr, 정수빈 학생기자 subin0615@kaist.ac.kr / 사진 / 차유진
최근 KAIST 학위수여식 졸업생 연설 영상이 조회수 130만 회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됐다. 영상 속 주인공은 의사과학자인 차유진 동문이다. 의사과학자는 말 그대로 의사이면서 과학자로, 기초의학과 임상 두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균형 있게 갖춘 연구자를 말한다. 차 동문은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의로 지내다, 모교로 돌아와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의사과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차유진 동문. ⓒ김예림
과학자를 꿈꿔 KAIST에 진학했지만, 과학자는 뚜렷한 확신이 없으면 힘들겠다고 생각해 고민하고 방황했다. 결국 의사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자고 타협해 의학전문대학원을 택했다.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전공을 살려 방사선으로 암 환자를 치료하는 방사선 종양학과 의사로 근무했다.
의사는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암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항상 뒤따랐다. 환자의 생사가 나로 인해 갈린다는 생각에 무력해지고 회의감도 들었다. 그래서 의사과학자가 되어 현대의학의 한계를 넓히면,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길을 선택했다.
레지던트 시절.
기차와 철로를 비유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기차를 정비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을 일반 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기차는 이미 깔린 철로로만 갈 수 있고, 바깥은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아직 철로가 없는 곳에 새로운 철로를 놓는 것이 의사과학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철로를 새로 놓으면, 의사들은 평소에 가지 못했던 길로도 기차를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든, 내가 좋아하는 비유다. (웃음)
주변의 시선이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이러한 장벽은 가슴 한편에 남아있던 KAIST 정신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용기 말이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준 KAIST 정신 덕분에 내가 하나의 선례가 돼 보자는 마음으로 뚝심 있게 도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KAIST 학위수여식에서 연설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는 차유진 동문.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의사과학자는 의학과 과학 모두를 공부해야 하기에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그만큼 한 분야만 공부한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 이 장점을 잘 살리면 좋을 것 같다.
레지던트 시절 학회에서 발표했던 모습.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도, 기본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기 어렵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고의 폭을 넓히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유연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차유진 동문은 뇌 기반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뇌 기반 인공지능(AI) 기초 연구를 하고 있다. 사람의 지능과 AI 지능을 융합해 양방향의 지능을 확장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이렇게 확장한 지능을 의학 같은 전문지식에 적용해 궁극적으로 특정 질환을 치료하거나 인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차유진 동문의 연구팀.
내가 의사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누구도 의사과학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의사과학자가 많은 주목과 지원을 받는 직업이 됐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게 아니라 휩쓸려 가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세상이 알아주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독자 여러분도 자기 소신대로, 자신감을 갖고 꿈을 향해 노력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