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혁 학생기자 baejh357@kaist.ac.kr 박서은 학생기자 separk0842@kaist.ac.kr 정다민 학생기자 cdm4280lucy@kaist.ac.kr
지난 3월 21일, 넷플릭스 SF 드라마 <삼체>가 공개됐다. 드라마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이 지은 동명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제작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공개 이후 <삼체>는 2주간 넷플릭스 집계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고,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 소설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삼체>는 ‘삼체문제’라는 물리학의 난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삼체문제’는 어떤 난제일까.
<삼체>는 삼체인이라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침략하려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삼체인들은 하나의 태양만 있는 지구와 달리, 세 개의 항성으로 둘러싸인 행성에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세 항성의 불규칙한 움직임 때문에 삼체 문명은 극단적인 기후 변화, 중력 이상 등 여러 이유로 끊임없이 멸망한다. 문명의 단절이 계속되자, 삼체인들은 새로운 항성계로 이주할 결심을 하고 지구를 목표 행성으로 선택한다. 삼체인들의 지구 침략 계기이자, 평생 해결하고자 했던 숙원이 바로 ‘삼체문제’라는 난제다. 물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하며, 그 힘은 질량이 크고 거리가 가까울수록 강해진다. 이때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과 그로 인해 두 물체가 움직이게 되는 상황을 ‘이체문제’라고 한다. 이체문제에서는 두 물체의 초기 조건인 질량, 위치, 속도를 알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적용해 이후에 발생할 움직임, 궤도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물체가 하나 더해지면 어떨까? 언뜻 보면 이체문제와 비슷해 간단히 풀릴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고전물리학의 난제인 삼체문제다. 물론 역학적으로 풀어낸다면 시간에 따른 물체의 특정 위치는 구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궤도를 예측하기는 까다롭다. 마치 무리수인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100번째 숫자를 구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수점 아래 100만 번째 수를 예측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고작 하나의 물체가 더 생기는 변화로 인해 물체들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삼체>의 원작인 류츠신의 소설 『삼체』. ⓒ자음과모음
그렇다면 삼체문제는 언제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을까? 삼체문제는 고전역학의 아버지인 아이작 뉴턴으로부터 시작됐다.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에는 태양, 지구, 달 세 물체가 서로 만유인력으로 상호작용하는 운동에 대한 삼체문제가 제시돼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분명 삼체문제는 난제라고 했는데, 우리는 태양과 지구, 달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지 않은가? 사실 태양계 천체의 움직임은 태양과 여러 행성,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 소행성 등으로 이뤄진 다체문제다. 하지만 태양계에서 태양을 제외한 모든 천체는 태양보다 질량이 매우 작고, 만유인력이 상호작용하기에는 거리도 멀다. 그래서 태양계에서는 태양이 형성하는 중력장 안에서 다른 모든 천체가 운동한다고 해도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체문제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문제를 제시했던 뉴턴은 물 론이고,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처럼 수학계와 물리학계의 저명한 학자들 여럿이 이 문제에 도전했다. 1767년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점화식으로 세 천체의 움직임을 풀어보고자 했다. 1772년, 라그랑주는 ‘라그랑주 점’이라고 하는 특수해를 발견했다. 라그랑주는 세 물체 중 한 물체가 다른 두 물체보다 매우 가벼울 때, 이 가벼운 물체가 어떤 궤도를 지니는지 계산했다. 이를 통해 특정한 점에서는 가벼운 물체가 다른 두 물체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궤도를 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라그랑주 점은 공전하는 두 개의 천체 사이에 중력이 균형을 이뤄 상쇄되는 지점으로, 총 다섯 개의 라그랑주 점이 있다. 하지만 라그랑주 점은 삼체문제의 특수한 상황의 해답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1887년,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 2세가 자신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해 다체문제에 거액의 상금을 건다. 이에 참전한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세 천체 중 두 물체를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삼체문제의 특수해를 구했다. 그런데 이 특수해는 초기 조건이 아주 조금만 바뀌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다. 푸앵카레는 이를 바탕으로 1890년, 삼체문제의 일반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후에도 많은 연구자가 삼체문제, 나아가 다체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1909년 핀란드의 수학자 카를 F. 순드만은 수렴하는 일반해의 존재를 증명했지만, 최소 10의 800만 승 개의 항을 포함하는 급수 계산이 필요해 실용적인 해를 구하지는 못했다. 현대에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수치해석적으로 삼체문제의 근삿값을 구하고 있다. 다만 삼체문제는 라그랑주 점과 같은 여러 특수해가 발견됐지만, 사체문제는 특수해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다체문제의 특수해나 복잡한 운동궤도의 패턴을 찾기 위한 연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삼체문제에 대한 푸앵카레의 증명은 과학계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전까지 과학계에서는 뉴턴과 라플라스가 주장한 ‘결정론’이 우세했다. 초기 조건과 운동 법칙을 알면 이후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으므로, 우주의 모든 운동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나아가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푸앵카레의 증명으로, 기존 물리학의 법칙이었던 결정론은 도전받게 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개념이 ‘카오스 이론’이다. ‘카오스’란 초기 조건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즉, 카오스 이론은 초기 조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스템을 다루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카오스 이론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1960년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다. 그는 기상 예측 시 소수점 셋째 자리 미만을 생략해 계산했는데, 전혀 엉뚱한 결과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로렌츠는 대기를 상세히 모델링하더라도, 장기간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1972년 이 결과를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소개했는데, 이로 인해 카오스 이론은 ‘나비효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자연계에는 유체의 흐름, 불규칙한 심장 박동, 날씨 등 다양한 카오스 상태가 존재한다. 삼체문제에서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한 물체들의 운동 상태도 마찬가지다. 다만 카오스 이론은 ‘예측 불가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는 무작위적이거나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한 현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내재된 규칙과 질서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혼돈 속에서 숨겨진 규칙을 찾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카오스 이론을 ‘결정론적 혼돈’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떠한 계에서도 초기 조건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카오스 이론은 어려운 학문의 대명사로 꼽힌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 법칙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 노력은 우리가 지구를 넘어 우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오늘날 카오스 이론은 기상 예측, 금융 시장 분석, 생태계 모델링, 다양한 공학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카오스 이론은 우리가 세상을 더 나은 시각에서 이해하고 바라보는 데 필수적인 도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연계를 이해하려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 같은 지구인의 노력이 어쩌면 미래에 태풍처럼 거대한 우주적 변화를 낳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삼체>의 모티브가 된 곳은 지구에서 4.37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로, 세 개의 항성으로 이뤄져 있다. ⓒshutterstock
삼체문제는 아이작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었다. ©wikimedia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삼체문제의 일반해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wikimedia
삼체문제에서 궤도가 주기성을 갖는 특수해의 예시. ©wikimedia
라그랑주 점은 삼체문제에서 라그랑주가 발견한 특별해로, 태양과 지구 주변에도 두 천체의 중력이 상쇄되어 물체가 정지해 있을 수 있는 곳이 4개 있다. ©ESA
렌츠 방정식의 해가 보여주는 궤도. 카오스 이론의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wikimedi
우리는 보통 물리를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 ‘물리도 다른 학문과 다를 것 없다’라고 말하는 물리학자가 있다. 최형순 KAIST 물리학과 교수를 만나보자 Q. 삼체문제 외에 수학이나 물리학의 난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삼체문제는 사실 시작이 물리학적인 개념일 뿐이지, 이미 물리학자들의 손을 떠난 수학 문제다. 대표적인 물리학계 난제로는 암흑물질이 있다. 우주의 은하는 한 방향으로 돌고 있는 데, 천체들의 질량을 더해 은하의 별이 받는 중력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관측된 회전 속도에 따르면 계산된 질량의 5배가 되는 질량이 필요하다. 뉴턴의 운동 법칙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전자기파로 관측할 수 없는 어떤 질량이 우주에 별보다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암흑물질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자연에 존재하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 력)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려는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난제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Q. 어떻게 물리학자가 되었는가? 내가 처음 배운 물리 법칙 중 하나가 옴의 법칙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간단한 수식으로 설명되는 문제만 배운다. 그래서 물리학은 아주 단순한 법칙을 가지고 세상 모든 것을 설명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물리학의 매력이라 착각하곤 한다. 그때는 나도 물리 법칙만 알면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물리학을 깊게 배울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 법칙은 아주 정확한 조건 안에서만 쓸 수 있는 법칙이다. 삼체문제만 봐도 그렇다. 고작 세 물체의 상호작용조차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문제를 어떠한 제한 조건의 상자에 가둔 뒤, 상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삼체문제도 특정 조건에서만 해를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흥미를 잃었다면 물리학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가 배운 물리학 지식을 토대로 나의 연구 분야, 내가 설정한 상자 안에서 문제를 푸는 과정이 재밌었다. 착각으로 시작했지만, 수년간 지식의 체계를 쌓고, 이를 토대로 시작한 연구를 이어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Q.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양자유체를 연구한다. 양자유체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초유체를 들 수 있는데, 흔히 아는 초전도체와 비슷한 개념이다. 초전도체는 자유전자가 고체라는 공간에서 저항 없이 돌아다니는 것인데, 초유체는 유체가 튜브 등의 특정 공간에서 저항 없이 돌아다니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유체가 저항 없이 흐르기 위한 조건과 양자역학적 현상이 결합해 나타나므로 양자유체라고 부른다.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원자 수준의 미시적인 크기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온의 상황이다. 온도가 낮아지면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양자역학적 특성이 잘 나타난다. 그래서 이 연구 분야를 저온 물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낮은 온도에서 나타나는, 물질의 양자역학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Q. 과학자가 되기 위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먼저 호기심이 필요하다. 내 연구 분야만의 상자, 경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문제를 만들어 보고, 그 문제의 답이 궁금해져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끈기다.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열망이 끈기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5년이든, 10년이든, 50년이든 내 연구 인생을 다 바쳐서 해내고 싶은, 끈기를 만들 목표를 찾는 것 이 중요하다. Q. 진로를 고민하는 <KAIST비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해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안 좋은 의미로 쓰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이를 독려의 의미로 해주고 싶다. 남의 이야기만 듣고서는 결정할 수 없다. 관심이 있고, 해보고 싶다면 당 연히 해봐야 하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된다. 인생에 답을 알고 시작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이들의 말에 지레 겁먹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KAIST 물리학과 최형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