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건 학생기자 choiriley2004@kaist.ac.kr 정수빈 학생기자 subin0615@kaist.ac.kr 사진 박성호
여행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여기, 여행을 진짜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 박성호 여행 작가는 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공유하고, 동기부여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또 본인의 여행 경험을 『은둔형 여행 인간』, 『바나나 그 다음,』 같은 책으로 집필하고 있다. 박 작가를 만나 여행 작가의 삶은 어떤지 들어봤다.
Q. 학창 시절, KAIST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중학생 때까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생활하다가 울산에 있는 현대청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천생 이과생이어서 물리 같은 과학 과목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공계열 진학을 희망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도 함께 합격했었는데, 1학년 때부터 전공을 정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대학교에 가서 천천히 내 전공을 알아가고 싶어 새내기과정학부를 운영하는 KAIST에 진학했다. Q. KAIST에 입학해 산업디자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버지께서도 산업디자인학과를 전공하셨고, 누나도 대학교를 산업디자인학과로 입학했다. 이처럼 가족 전체가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아, 디자인이 친숙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남들에게 보여줄 때 만족감과 뿌듯함이 컸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산업디자인학과를 선택했다.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들었던 수업 중 ‘사진 기법’에서 배웠던 것들은 아직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프리랜서 여행가로 활동하면서, 사진이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욕심이 현재의 원동력인 만큼,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수업이나 다름없다. Q. 여행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대학교 2학년 때쯤부터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바빠 여행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KAIST에 진학한 후, 동아리 활동을 제외하고는 학교생활이 고등학교 시절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처럼 학교를 한 번쯤 떠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뒤,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의 발자취를 책으로 남기고 싶어 졸업 후 곧바로 책을 집필하며 여행 작가로서 삶을 살기 시작했다. Q. KAIST 출신이라는 점이 여행 작가로 살면서 도움이 된 적이 있는가? 평소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KAIST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들이 아깝지 않냐’다. 솔직히 모든 공부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흔히 ‘디자인’을 두고 예쁜 것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디자인은 대중이 가지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며 제품으로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면 이제는 그 제품이 나의 여행기와 책으로 바뀐 것뿐이다. Q. 앞으로 여행 작가로서의 계획이 궁금하다. 창의적이거나 창조적인 일을 할 때는 계획을 세세하게 정하고 사는 게 크게 중요치 않다고 본다. 그래서 요즘 내가 세운 목표를 열심히 하는 데 좀 더 초점을 두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세 번째 책을 집필하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 90개국을 방문했는데, 35세가 되기 전에 10개국을 채워 100개국 방문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Q. 다시 KAISTian 시절로 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가? 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방학 기간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용했을 것 같다. 대학생에게 방학은 인생에서 평소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8번의 방학 중 5번은 별 의미 없이 보낸 듯하다. 되돌아보면, 체력도 에너지도 넘치는 시절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쉽다. 지금 다시 대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방학 때 모은 돈으로 외국에 가보거나, 최소한 예체능 분야의 취미를 갖는 데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 Q. 진로를 고민하는 <KAIST비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는 하나의 직업으로 내 미래를 규정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 계속해서 ‘지금 내가 가진 것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꾸준히 해야 한다. 나 또한 KAIST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고, 평생 여행 작가만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과 아는 것, 경험한 것 을 바탕으로 어떤 일에 도전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했으면 한다.
박성호 동문의 사무실 전경. @정수빈
박성호 동문은 곧 세계 100개국 여행을 앞두고 있다.
박성호 동문이 집필한 『은둔형 여행 인간』.
(번외) Q. 가장 추천하는 여행지는? 나는 낯선 곳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며, 도시보다는 자연을 선호한다. 그래서 세렝게티와 아이슬란드를 추천하고 싶다. 두 곳 모두 자연이 광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광활한 자연을 보다 보면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스트레스나 문제도 보잘것없고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한번쯤 우리가 범접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자연과 마주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박성호 여행 작가가 추천한 여행지 아이슬란드.
박성호 여행 작가가 추천한 여행지 세렝게티.